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손님이 제일 몰리는 시간대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마유즈미가 운영하는 카페도 예외는 아니다. 마유즈미 카페의 경우에는 점심인 바로 이 시각이었다. 사무실이 밀집한 이 상권은 점심시간이 되면 점심시간을 맞아 회사 밖으로 나온 직장인들로 북적였다. 그건 마유즈미의 카페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혼자 운영하는 작은 카페일 뿐이지만 그런데도 찾아오는 손님은 꽤 됐다. 거기에 일하는 사람은 마유즈미 혼자뿐이니 점심이 되면 늘 일손이 부족했다. 지금도 밀린 주문을 받느냐 마유즈미는 정신없었다.
딸랑.
손님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방울 소리가 울린다. 커피를 내리던 마유즈미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던 찰나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표정을 고치고 접객 인사를 한다. 다행히 손님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메뉴판을 보며 고민하던 손님이 결심한 듯 카운터로 다가오면 마유즈미가 가서 주문을 받아왔다.
아마 그 손님이 이 시간대의 마지막 손님이었던 듯 그 뒤로는 손님이 이어 들어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주문받은 카페라테까지 손님에게 내어주고 나면 드디어 마유즈미는 한숨 돌린다. 회사원의 생활이 맞지 않아 시작한 카페였지만 역시 세상에 만만한 일이란 없었다. 카페가 아니라 다른 일을 시작해야 했을지도 몰라. 마유즈미는 때때로 후회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잘하고 있었다. 다른 일을 했으면 여기서 다시 보는 일도 없었을 텐데. 이곳에서 다시 만났던 후배의 얼굴이 떠올라 마유즈미는 다시 미간을 좁힌다.
카페 안에 있는 손님들을 둘러본다. 역시 그 녀석은 없었다. 애초에 들어왔으면 마유즈미가 모를 리 없었을 테다만. 마유즈미는 속으로 혀를 찬다.
있다 또 올게요.
아카시는 그렇게 말했을 뿐. 언제 온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거기에 그 말은 진심이 아니라 그저 상투적인 인삿말일지도 몰랐다. 아카시가 이곳에 온다 한들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다. 마유즈미또한 아카시에게 따로 용건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마유즈미가 아카시가 온다면 점심시간에 올지도 모른다고 멋대로 신경 썼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유즈미가 신경 쓰게 된 원인은 애초에 아카시 쪽에 있다. 마유즈미가 신경 쓰게 된 원인은 아카시의 또 올 거라는 한마디니깐.
그러게 왜 쓸데없이 그런 소리를 해서. 이래서야 마치 내 쪽에서 기다리다가 바람맞은 거 같잖아. 왠지모르게 짜증이 치밀어 올라 마유즈미는 투덜거리며 꺼내놓았던 코코아 가루를 다시 선반에 집어넣었다.
옥상 문을 열고 옥상에 들어선 아카시가 중얼거렸다. 넓고 높은 라쿠잔의 건물 내에서도 이 옥상은 사람이 뜸한 곳이었다. 그런 옥상에 아카시가 오를 이유는 하나뿐이다. 그 이유인 장본인인 마유즈미 치히로는 난간에 기대어 자는 중이다. 봄이 다가오고 있다지만 아직 날은 쌀쌀하다. 거기에 이 옥상은 사람이 있기에 쾌적한 장소라기엔 무리가 있다. 햇빛도 따갑고 바람이 불어 먼지도 날린다. 그렇기에 이 장소는 저 사람 혼자 독차지하는 거지만. 아카시도 마유즈미가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굳이 찾아오지 않을 장소다.
"아무 데서나 자는 건 좋지 않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조금 착잡한 표정을 하고 아카시는 규칙적으로 숨을 내쉬고 있는 마유즈미를 바라본다. 마유즈미가 이 옥상에서 자는 것도, 그걸 아카시가 보는 것도 처음은 아니다. 그때마다 아카시는 마유즈미를 걱정했지만 걱정하는 아카시에게 돌아온 건 더는 주장도 아니니 참견하지 말라는 마유즈미의 투덜거림이었다. 마유즈미의 말대로 마유즈미는 이제 은퇴했고 자신도 더는 마유즈미의 주장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후배로서, 선배가 걱정되는 건 아카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아카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유즈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규칙적인 숨을 내쉬고 있을 뿐이다. 정말이지. 어떻게 이런 옥상에서 저렇게 평온한 얼굴로 잠들 수가 있는지. 아카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마유즈미의 자는 얼굴을 보는 건 싫어하지 않는다. 평소 자신을 보면 경계하는 얼굴과 다르게 풀어진 얼굴. 아카시는 이 얼굴이 늘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이 옥상에 오를 사람은 마유즈미를 제외하면 자신밖에 없기에. 이 라쿠잔에서 저 얼굴을 보는 게 자신뿐이라고 생각하면 즐겁기도 했다.
'키스하면, 깨어날지도.'
자는 마유즈미를 보다가 문득 떠오른 건 유명한 어느 동화다. 잠에 빠진 공주가 왕자의 키스를 받고 깨어난다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동화. 마유즈미가 잠에 빠진 공주라면 자신은 그를 깨우러 온 왕자인가. 터무니없는 생각에 아카시가 실없이 웃음을 흘린다. 그렇지만 정말 키스하면 마유즈미는 깨어날지도 모른다. 아카시는 마유즈미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어 입술을 맞추려다가 멈춘다. 어쩐지 이대로 깨우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계속 잠들어 있으면 이 사람은 계속 나만의 것이 될지도 모르는데. 위험할지도 모르는 생각이 스친다. 계속 이대로 마유즈미가 깨어나지 않고 잠들어 있다면. 그 모습을 오직 나만 볼 수 있다면. 동화 속의 잠자는 공주를 깨우는 왕자는 사실은 공주를 깨우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빨리 마유즈미가 잠에서 깨 눈을 떠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계속 이대로 자신의 앞에서 잠들어있어 주어도 좋겠어. 모순적인 사고였지만 충돌하지는 않았다. 어느 쪽이고 그 근원은 같으니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아카시는 마유즈미의 옆에 자리 잡는다. 자고있는 마유즈미의 얼굴을 보며 아카시는 즐겁게 시간이 흐름을 느꼈다.
아카시가 뱀파이어라는 말에 마유즈미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안심될 정도다. 인생에 치트키를 쓴 거 같은 저 아카시 세이쥬로가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게 더 놀랄 일이었다. 자신이 아는 인류의 범위는 지켜졌다고 마유즈미는 내심 안심했다. 그렇다 해도 아카시가 왜 자신에게 그런 소리를 했는지 마유즈미는 몰랐다. 아카시가 말해주기 전까지 마유즈미는 아카시가 뱀파이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숨겨왔던 비밀이라는 거겠지. 그 비밀을 왜 곧 졸업할 마유즈미에게 둘 말고는 아무도 없는 이 옥상에서 말하는 것인가. 본의 아니게 아카시 세이쥬로의 비밀을 들어버린 마유즈미는 난감하기 그지없다.
"―그거야 제가 마유즈미 선배의 피를 마시고 싶으니까요."
"하아?"
왜 자신에게 그런 소리를 하냐고 물어보자 아카시 입에서 예상치 못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아니, 사실은 예상하던 대답 중 하나긴 했다. 그렇다고 순순히 납득할 수도 없었다. 마유즈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아카시가 재밌다는 듯 생글거리며 웃었다. 마유즈미는 어쩐지 털이 곤두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제가 마유즈미 선배의 피를 빨아도 될까요?"
"잠깐잠깐, 도련님 그거 진심이야?"
"말했잖아요? 뱀파이어라고. 당연히 피를 먹고 살지요. 마유즈미 선배도 제가 뱀파이어란건 믿는다고 하셨잖아요?"
분명 그랬다. 분명 그랬지만 그 먹이가 자신이 되는 건 다른 얘기다. 제가 뱀파이어니 피를 주세요, 하고 부탁하니 순순히 자신의 피를 줄 만큼 마유즈미는 봉사 정신이 투철하지 않다. 창작물 속의 뱀파이어에게 물린 사람들의 최후를 떠올려본다. 그대로 피를 모조리 빨려 죽거나, 아니면 새로운 뱀파이어가 되던가, 물린 뱀파이어에게 예속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마유즈미는 사양이었다.
"아, 안심하세요. 마유즈미 선배에게 그다지 큰 영향은 없으니깐요. 철분 수치는… 조금 부족해질지도 모르겠네요. 그러지 않게 잘 조절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 네 그러세요, 라고 할 줄 알았냐? 수혈 팩이라도 구해서 빨아먹지 그래."
"수혈 팩이라, 확실히 그 방법도 있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생피보단 효율도 맛도 떨어져서…"
마유즈미가 비아냥대며 말하면 아카시가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한탄한다. 효율? 맛? 웃기지 말라고. 마유즈미는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아카시의 사정을 마유즈미가 봐줄 이유는 없었다.
"그건 네 사정이고. 내가 너한테 피를 줄 이유가 안 돼."
딱 잘라 말하면 아카시는 곤란하다는 듯 손을 입가로 가져가 고민을 하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의외로 순순히 포기하는 건가. 마유즈미는 내심 기대했지만 아카시에 입에서 나온 말은 마유즈미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대답이었다.
"…사실 원칙대로라면 이렇게 부탁할 필요도 없긴 합니다."
"그게 무슨…"
"―자, 제 눈을 보세요."
아카시의 말에 마유즈미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아카시의 눈으로 향한다. 그 순간 마유즈미의 몸과 사고가 얼어붙는다. 손 까딱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숨까지도 얼어붙어 마치 시간이 정지된 거 같았다. 얼어붙은 사고는 순식간에 기능을 정지하고 안개가 끼어 마유즈미 치히로라는 존재를 하나둘 서서히 지워간다. 보이는 건 오직 눈앞의 붉은 눈뿐이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잘 모르게 될 즈음, 박수 소리가 들렸다. 아카시가 낸 소리였다. 그 소리를 신호로 마유즈미의 의식이 살아난다. 얼어붙었던 몸과 의식이 다시 일하자 마유즈미는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금방이라도 다리가 풀려 쓰러질 거 같은 걸 겨우 버티고 있으면 아카시가 빙그레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자신을 보고 있다.
"저희 일족… 그러니깐 뱀파이어의 능력입니다. 아무래도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마시는 건 꽤 위험요소가 동반되는 일이라 좀 더 편히 먹이를 먹을 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될 수 있으면 쓰고 싶지 않아요."
"……그 소리는 내가 거절해도 소용없다는 뜻?"
"―네."
아카시의 대답은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이 깔끔했다. 이제라도 도망치는 게 좋을까. 마유즈미의 눈에 옥상의 문이 들어온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자신은 옥상 난간에 기대고 있었고 그 앞을 바로 아카시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아카시와 자신의 피지컬 차이라면… 도망치더라도 금방 잡히겠지. 마유즈미가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문다. 아카시는 마유즈미에게 물어봤지만, 애초에 마유즈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럼 목, 보여주세요."
"…꼭 목이어야 하는 거야?"
"다른 부위도 안되는 건 아니지만… 그쪽이 피 빨기에 최적화 되어있을 정도로 편하기도 하고 부작용이 안 나타날 확률이 크거든요."
부작용이라니. 그건 또 뭐야.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마유즈미는 괜히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도망가지 못하는 이상 뭘하든 똑같았다. 결국 마유즈미는 교복의 넥타이를 풀고 교복 셔츠의 윗단추를 풀러 아카시에게 자신의 목을 보였다. 목을 보이는 자신이 마치 맹수 앞에 먹이로 던져진 피식자처럼 느껴졌다. 아주 완벽히 틀린 소리는 아니다.
입을 살짝 벌리며 아카시가 천천히 마유즈미에게로 다가온다. 평소엔 본 적 없는 아카시의 뾰족한 송곳니가 햇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것이 마유즈미 눈에 들어왔다.
아카시의 송곳니가 마유즈미의 목에 닿았던 순간 서늘하다 싶더니 단숨에 마유즈미의 피부를 꿰뚫는다. 으윽, 마유즈미의 낮은 신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카시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처음 목이 꿰뚫을 때를 제외하면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가 마유즈미에게서 아카시에게로 빠져나가는 것이 마유즈미에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아카시에게서 무언가 흘러들어온 것이 채운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져 마유즈미는 덜컥 무서워진다. 그렇다 해도 마유즈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것'은 마유즈미의 사고를 점점 녹여갔다. 아까 아카시가 마유즈미의 사고를 차갑게 얼렸다면 이번엔 정반대였다. 무언가가, 뜨거운 열로 마유즈미의 사고를 녹인다. 하아, 아… 뜨거워진 의식과 함께 마유즈미의 숨이 뜨거워지는 것도 금방이었다. 마유즈미의 온몸에 힘이 빠진다. 이게, 대체… 더운 머리로 필사적으로 마유즈미는 생각하려고 했지만 머지않아 마유즈미의 사고가 정지했다. 그저 뜨거운 숨을 뱉을 뿐이다.
이번에도, 잘 먹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마유즈미의 목에서 입을 뗀 아카시가 마유즈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렇지만 마유즈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얼굴이 상기된 채 온몸에 힘이 풀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마유즈미를 아카시가 만족스럽게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