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먹데이까지 D-34
아카시가 뱀파이어입니다~
아카시가 뱀파이어라는 말에 마유즈미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안심될 정도다. 인생에 치트키를 쓴 거 같은 저 아카시 세이쥬로가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게 더 놀랄 일이었다. 자신이 아는 인류의 범위는 지켜졌다고 마유즈미는 내심 안심했다. 그렇다 해도 아카시가 왜 자신에게 그런 소리를 했는지 마유즈미는 몰랐다. 아카시가 말해주기 전까지 마유즈미는 아카시가 뱀파이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숨겨왔던 비밀이라는 거겠지. 그 비밀을 왜 곧 졸업할 마유즈미에게 둘 말고는 아무도 없는 이 옥상에서 말하는 것인가. 본의 아니게 아카시 세이쥬로의 비밀을 들어버린 마유즈미는 난감하기 그지없다.
"―그거야 제가 마유즈미 선배의 피를 마시고 싶으니까요."
"하아?"
왜 자신에게 그런 소리를 하냐고 물어보자 아카시 입에서 예상치 못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아니, 사실은 예상하던 대답 중 하나긴 했다. 그렇다고 순순히 납득할 수도 없었다. 마유즈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아카시가 재밌다는 듯 생글거리며 웃었다. 마유즈미는 어쩐지 털이 곤두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제가 마유즈미 선배의 피를 빨아도 될까요?"
"잠깐잠깐, 도련님 그거 진심이야?"
"말했잖아요? 뱀파이어라고. 당연히 피를 먹고 살지요. 마유즈미 선배도 제가 뱀파이어란건 믿는다고 하셨잖아요?"
분명 그랬다. 분명 그랬지만 그 먹이가 자신이 되는 건 다른 얘기다. 제가 뱀파이어니 피를 주세요, 하고 부탁하니 순순히 자신의 피를 줄 만큼 마유즈미는 봉사 정신이 투철하지 않다. 창작물 속의 뱀파이어에게 물린 사람들의 최후를 떠올려본다. 그대로 피를 모조리 빨려 죽거나, 아니면 새로운 뱀파이어가 되던가, 물린 뱀파이어에게 예속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마유즈미는 사양이었다.
"아, 안심하세요. 마유즈미 선배에게 그다지 큰 영향은 없으니깐요. 철분 수치는… 조금 부족해질지도 모르겠네요. 그러지 않게 잘 조절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 네 그러세요, 라고 할 줄 알았냐? 수혈 팩이라도 구해서 빨아먹지 그래."
"수혈 팩이라, 확실히 그 방법도 있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생피보단 효율도 맛도 떨어져서…"
마유즈미가 비아냥대며 말하면 아카시가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한탄한다. 효율? 맛? 웃기지 말라고. 마유즈미는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아카시의 사정을 마유즈미가 봐줄 이유는 없었다.
"그건 네 사정이고. 내가 너한테 피를 줄 이유가 안 돼."
딱 잘라 말하면 아카시는 곤란하다는 듯 손을 입가로 가져가 고민을 하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의외로 순순히 포기하는 건가. 마유즈미는 내심 기대했지만 아카시에 입에서 나온 말은 마유즈미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대답이었다.
"…사실 원칙대로라면 이렇게 부탁할 필요도 없긴 합니다."
"그게 무슨…"
"―자, 제 눈을 보세요."
아카시의 말에 마유즈미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아카시의 눈으로 향한다. 그 순간 마유즈미의 몸과 사고가 얼어붙는다. 손 까딱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숨까지도 얼어붙어 마치 시간이 정지된 거 같았다. 얼어붙은 사고는 순식간에 기능을 정지하고 안개가 끼어 마유즈미 치히로라는 존재를 하나둘 서서히 지워간다. 보이는 건 오직 눈앞의 붉은 눈뿐이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잘 모르게 될 즈음, 박수 소리가 들렸다. 아카시가 낸 소리였다. 그 소리를 신호로 마유즈미의 의식이 살아난다. 얼어붙었던 몸과 의식이 다시 일하자 마유즈미는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금방이라도 다리가 풀려 쓰러질 거 같은 걸 겨우 버티고 있으면 아카시가 빙그레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자신을 보고 있다.
"저희 일족… 그러니깐 뱀파이어의 능력입니다. 아무래도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마시는 건 꽤 위험요소가 동반되는 일이라 좀 더 편히 먹이를 먹을 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될 수 있으면 쓰고 싶지 않아요."
"……그 소리는 내가 거절해도 소용없다는 뜻?"
"―네."
아카시의 대답은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이 깔끔했다. 이제라도 도망치는 게 좋을까. 마유즈미의 눈에 옥상의 문이 들어온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자신은 옥상 난간에 기대고 있었고 그 앞을 바로 아카시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아카시와 자신의 피지컬 차이라면… 도망치더라도 금방 잡히겠지. 마유즈미가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문다. 아카시는 마유즈미에게 물어봤지만, 애초에 마유즈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럼 목, 보여주세요."
"…꼭 목이어야 하는 거야?"
"다른 부위도 안되는 건 아니지만… 그쪽이 피 빨기에 최적화 되어있을 정도로 편하기도 하고 부작용이 안 나타날 확률이 크거든요."
부작용이라니. 그건 또 뭐야.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마유즈미는 괜히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도망가지 못하는 이상 뭘하든 똑같았다. 결국 마유즈미는 교복의 넥타이를 풀고 교복 셔츠의 윗단추를 풀러 아카시에게 자신의 목을 보였다. 목을 보이는 자신이 마치 맹수 앞에 먹이로 던져진 피식자처럼 느껴졌다. 아주 완벽히 틀린 소리는 아니다.
입을 살짝 벌리며 아카시가 천천히 마유즈미에게로 다가온다. 평소엔 본 적 없는 아카시의 뾰족한 송곳니가 햇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것이 마유즈미 눈에 들어왔다.
아카시의 송곳니가 마유즈미의 목에 닿았던 순간 서늘하다 싶더니 단숨에 마유즈미의 피부를 꿰뚫는다. 으윽, 마유즈미의 낮은 신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카시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처음 목이 꿰뚫을 때를 제외하면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가 마유즈미에게서 아카시에게로 빠져나가는 것이 마유즈미에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아카시에게서 무언가 흘러들어온 것이 채운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져 마유즈미는 덜컥 무서워진다. 그렇다 해도 마유즈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것'은 마유즈미의 사고를 점점 녹여갔다. 아까 아카시가 마유즈미의 사고를 차갑게 얼렸다면 이번엔 정반대였다. 무언가가, 뜨거운 열로 마유즈미의 사고를 녹인다. 하아, 아… 뜨거워진 의식과 함께 마유즈미의 숨이 뜨거워지는 것도 금방이었다. 마유즈미의 온몸에 힘이 빠진다. 이게, 대체… 더운 머리로 필사적으로 마유즈미는 생각하려고 했지만 머지않아 마유즈미의 사고가 정지했다. 그저 뜨거운 숨을 뱉을 뿐이다.
이번에도, 잘 먹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마유즈미의 목에서 입을 뗀 아카시가 마유즈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렇지만 마유즈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얼굴이 상기된 채 온몸에 힘이 풀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마유즈미를 아카시가 만족스럽게 껴안았다.
'연성 >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먹]어느 점심의 카페 (0) | 2019.03.05 |
---|---|
[적먹] 잠자는 옥상의 식스맨 (0) | 2019.03.03 |
[적먹] 당신의 생일 (0) | 2019.03.01 |
[적먹/R19]mirror play (0) | 2019.02.28 |
[적먹/R19] Estrus cat (0) | 2019.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