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제가 아니고 뭐겠어요. 아카시는 한마디 쏘아 붙여주고 싶은 걸 꾹 참는다. 대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저 실없는 소리는 다름 아닌 자신의 동거인에게서 나온 소리였다. 동거인은 자신의 연인이기도 했다. 아카시의 표정이 굳어가는 것을 보고 마유즈미를 부축하고 있는 카사마츠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아카시는 딱히 그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저렇게 된 마유즈미를 여기까지 데려와 주었으니 감사를 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 해도 생각과 다르게 아카시의 얼굴은 여전히 풀릴 생각을 안 한다. 그런 아카시를 보고 먼저 입을 연 건 카사마츠 쪽이었다.
"그… 미안하다, 아카시. 나도 나름대로 주의하고 있었는데 한 눈판 사이에 이렇게 돼버려서… 아무래도 타카오 그 녀석이 부추긴 모양이야."
"타카오, 가요…?"
"타카오 그 녀석도 성인 된 지 얼마 안 됐잖냐. 그래서 그 녀석이 낀 술자리는 처음이었는데 아무래도 마유즈미 저 녀석이 이렇게까지 술이 약한 줄 몰랐던 모양이야. 설마 이렇게까지 약할 줄 몰랐다나. 타카오한테는 내가 한마디 해뒀으니 너무 뭐라고 하지 말고……."
카사마츠는 말끝을 흐린다. 아카시의 눈이 가늘어진다. 카사마츠는 슬쩍 시선을 돌린다. 마유즈미가 이렇게 된 데에는 카사마츠도 어느 정도 책임을 느끼고는 있었다. 말했듯이 자신이 미리 주의 못 한 탓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어째 변명하는 거 같아 카사마츠는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보다 마유즈미 선배를 여기까지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내가 뭘… 아무튼 쉬어라. 난 이만 가볼게.
제대로 혼자 서지도 못하는 마유즈미를 받아들며 아카시가 깍듯이 인사하면 카사마츠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고는 떠난다. 그가 떠나는 걸 확인한 아카시가 다시 길게 한숨을 쉬었다. 회식자리에 나간다 했을 때부터 걱정했지만 설마 정말 이렇게 될줄은. 카사마츠가 주장으로 있는 저 농구팀은 꽤 오래전부터 마유즈미가 소속된 농구모임이었다. 그 모임의 회식에 나간다 했을 때부터 걱정했지만 또 이렇게 될 줄…….
마유즈미가 이렇게 된 원인으로 마유즈미를 부추겼다는 타카오가 있긴 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을 찾자면 이 사람 본인일 터다. 자신이 술이 약한 걸 뻔히 아는 주제에 술자리만 갔다 오면 이렇게 취해 집으로 오는 건 한두 번이 아니다. 마유즈미가 의외로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인 것은 아카시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매번 이렇게…….
아카시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마유즈미는 아카시에 껴안겨 웅얼거릴 뿐이다. 마유즈미의 숨결에서 약하게 술 냄새가 났다.
"―선배, 정신 차리세요."
이대로 바로 침대 위로 눕히는 방법도 있긴 하겠지만 아카시는 굳이 마유즈미를 깨운다. 아무리 그래도 일단 정신을 차리게 하고 씻겨야 할 거 같았다. 아카시가 마유즈미를 깨우면 고개를 푹 숙였던 마유즈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지만 아직 눈이 풀린 그대로다. 아, 이건 틀렸군. 아카시는 머리가 아파진다.
"하하… 아카시네……."
"그 소리는 아까도 들었어요."
"아카시이……"
아카시의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유즈미가 아카시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묻는다. 자신의 이마를 아카시의 어깨에 문지르는 마유즈미 덕택에 아카시가 잠시 굳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다. 역시 마유즈미는 술기운에 제정신이 아니다. 여기서는 따끔하게 혼내는 게 좋을까. 하지만 지금의 이 사람에게는 별 소용이 없겠지. 아카시의 얼굴이 조금 풀어진다.
"아카시 미안……."
"뭐가요?"
"네 말 안 듣고 술 마셔서……."
"…아시고 있으면 됐어요."
"아카시, 좋아해……."
작게 중얼거리는 마유즈미의 목소리를 아카시는 놓치지 않는다. 술에 취한 마유즈미가 솔직해지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카시에게는 언제나 신선했다. 아카시의 표정은 완전히 풀어져 작게 미소지었다. 사실 이런 마유즈미의 취한 모습을 아카시가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런 모습은 나한테만 보여주면 되는데."
아카시가 아무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역시 일어나면 한마디 해야겠다고, 아카시는 다시 잠들어버린 마유즈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