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유즈미는 멍하게 있을 때가 많았다. 마유즈미와 살고 있는 것도 햇수로 몇 년이 지나고 있었지만 이런 일은 드물었다. 지금도 마유즈미는 책을 펼쳐놓은 채 멀거니 책 페이지만을 보고 있었다. 책을 넘기는 손은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는다. 아마 저건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니겠지.
"열이라도 있는 거 아니에요?"
"어……?"
지켜보던 아카시가 보다못해 불쑥 한마디를 꺼내면 마유즈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들었다. 마유즈미가 완전히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마유즈미의 이마에 아카시가 자신의 손을 올린다. 미열이긴 하지만 손을 타고 전해지는 온도가 뜨겁다.
"미열이긴 하지만 열이 있긴 한 거 같네요."
"그러고 보니 요새 몸이 꽤 나른했던 거 같기도 하고……."
"병원에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 됐어, 이 정도는 쉬면 나아."
아카시가 걱정스레 제안하면 마유즈미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카시의 눈이 못마땅한 듯이 가늘어진다.
"병원은 제때 가는 게 좋아요."
"정말 괜찮다니깐, 이 정도는."
"아무리 그래도 가보시는 게 좋아요. 작은 병이라고 방심했다가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요. 저희 어머니도 처음에는 작은 병이었는데……."
"……."
어머니의 얘기를 꺼내면 아카시는 눈에 띄게 침울해졌다. 그 모습을 보는 마유즈미는 곤란해진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안 갈 수도 없었다. 포기한 듯 마유즈미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알았어, 가면 될 거 아냐. 그래도 지금은 밤이니깐… 내일도 몸이 나른하고 열이 있다 싶으면 갈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쉬고 내일 아침 일찍 병원부터 가보죠. 저도 내일은 휴가 낼 테니까."
"벌써? 나 아직 이 책 다 못 읽었는데."
"쉬는 게 먼저예요."
아카시는 단호하다. 시계를 보면 시침은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밤이긴 하지만 잠들기도 이른 시간이다. 그렇지만 저렇게 완강히 나오는 아카시는 마유즈미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 몸 상태로 책을 읽어봤자 온전히 집중하기도 힘들긴 하겠지. 마유즈미는 아쉬운 내색을 하며 읽던 책을 덮었다.
"――마유즈미 씨, 몇 가지 검사를 받아보셨으면 하는데요."
"네…?"
마유즈미는 자신의 증상이 흔히 지나가는 감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병원을 찾아가면 의사의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나왔다. 검사라니. 그럼 평범한 감기가 아니란 건가? 마유즈미는 당황스러웠다.
"저, 무언가 큰 병이 의심되는 건가요?"
"그건, 아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검사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할 거 같군요."
마유즈미를 따라 같이 병원에 온 아카시가 혼란스러워하는 마유즈미 대신 물어보면 의사는 난색을 보일 뿐 제대로 된 답을 들려주지는 않았다. 그 모습에 마유즈미는 더욱 불안해진다. 진료실을 나오면 아카시가 말없이 손을 잡아주었다. 그 온기에 마유즈미는 조금 안심한다.
이후 마유즈미는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받았다. 무엇을 위한 검사인지 검사를 하는 의사나 간호사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지만 다들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말하기 어렵다는 소리뿐이었다. 검사를 마칠 때까지도 아카시가 마유즈미의 옆에 있어 주었다. 그 존재에 안심이 되면서도 마유즈미는 초조하게 아카시와 함께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놀라지 말고 들어주세요. 마유즈미 치히로씨는 현재 임신 중이십니다."
"네…?"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던 검사 결과였건만 의사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잘 못 들은 게 아니라면 분명 임신이라고 했었지. 임신? 누가? 내가? 스턴이 걸린 듯 마유즈미는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마유즈미는 분명 남자였다. 임신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방금 의사의 발언은 그런 마유즈미의 상식을 뒤흔드는 말이었다. 역시 무언가 착오가 있던 게 아닐까. 아니면 설마 아카시와 병원이 짠 몰래카메라라도 되는 건가? 옆에 있는 아카시쪽을 돌아보면 아카시도 놀란 건 마찬가지인 듯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저는 남자인데, 임신할 리가……."
"…놀라시는 것도 이해합니다만, 진정하고 들어주세요."
마유즈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의사가 짧게 한숨을 쉬고 말을 이어나간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극히 희귀한 사례긴 하나 남성이 임신하는 사례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마유즈미는 그 희귀한 사례 중 하나라는 거 같았다. 아이의 아버지로 누군가 짐작 가는 사람이 있냐고 의사가 물었을 때 마유즈미는 옆에 있는 아카시를 보는 거밖에 할 수 없었다. 별다르게 짐작 가는 사람은 없다. 아카시 뿐이다. 그러니 아마 아카시의 아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