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눌리는 감각에 눈살을 찌푸렸다. 답답함에 몸을 뒤척여 보지만 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거야 원, 단단히 잡혀버렸군. 남의 일처럼 멀거니 생각했다. 뒤척이려던 그 움직임마저도 그 녀석에게는 거슬렸던 걸까. 어깨를 잡고 있는 팔에 체중이 실린다. 으읏… 느껴지는 통증에 마유즈미는 저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뱉었다.
위를 올려보면 그 녀석은 즐거워 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 보고 있었다. 뭐가 재밌는 거야, 망할 자식. 떠오른 불평을 속으로 삼킨다. 대신 혀를 작게 찼다. 작은 소리였지만 저 녀석에게는 분명 들렸을 테지. 얼굴을 한층 더 구기고 있으면 오른쪽 뺨에 무언가 닿는다. 방금 전까지 마유즈미를 침대에 파묻고 있던 손이다. 뺨에 닿은 손은 그대로 얼굴을 쓰다듬는다 싶더니 손가락 끝으로 뺨을 쿡쿡 찔러대기 시작한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나 가만 내버려두고 있으면 움직임은 멈출 줄 모른다. 뺨이 찔러지는 감각이 그리 기분 좋지는 않다.
"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후후, 미안미안. 치히로가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무심코."
귀엽기는. 키 180이 훌쩍 넘는 건장한 체격의 성인남자가 대체 어디가. 그리고 마왕님 주제에 그렇게 쉽게 사과하지 말라고. 그런 캐릭터 아니었잖아? 어김없이 터져 나오는 불평은 이번에도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한다. 아까처럼 속으로 삼켰기 때문은 아니다. 자신을 내려 보던 전 농구부 후배―― 아카시 세이쥬로가 소리를 내기 전에 마유즈미의 입을 자신의 입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세간에서는 입맞춤, 혹은 키스라고 부른다지. 결국 같은 말이다만. 보통은 연인끼리 하는 행위다. 어디까지나 보통은 그렇다. 보통은 그렇다는 것은 어딘가에는 예외가 있다는 소리지. 아카시와 자신은 그 예외에 속한 관계일 것이다. 아마도.
혀가 얽히고 타액이 얽힌다. 질척이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간질간질한 감각을 참지 못하고 마유즈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지금 아카시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눈을 감고 있는 마유즈미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잡힌 얼굴이 조금 아파왔다. 삼켜질 듯한 입맞춤, 혹은 키스라고 불리는 그것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순간동안 이어졌다 아카시의 얼굴이 떨어지는 것으로 끝난다. 아카시의 얼굴이 떨어지는 것은 키스의 끝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시작의 신호기도 했다.
모자란 산소를 들이마시며 천천히 눈을 뜨면 여전히 자신을 덮고 있는 아카시의 얼굴이 보였다. 상기된 뺨에 열에 녹은 눈동자. 바보 같은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아카시를 보는 자신 또한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을까. 아카시 세이쥬로도 저런 얼굴을 하는 구나. 마유즈미는 새삼 놀란다. 저런 아카시의 얼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까지도 마유즈미는 몰랐다. 저 얼굴은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아. 마유즈미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잠깐, 몇 번이라고? 이게 처음이 아닌가? 아니아니, 그전에 왜 난 지금 이 상황에 가만히 있는 거야?
"치히로……."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들에 당황하고 있으면 뜨거운 숨결이 마유즈미의 이름을 부른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덩달아 자신의 숨결 또한 뜨거워지는 착각에 빠진다. 아니, 그건 착각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다. 저도 모르게 내뱉어진 한숨은 분명 뜨거웠다. 방금 전 떠오른 의문 따윈 열기에 쉽사리 녹아버린다.
아카시의 얼굴이 다시 마유즈미에게로 다가온다. 또 입을 맞춰오려는 건가 싶어 질끈 눈을 감았지만 입술에 각오했던 충격은 오지 않는다. 대신 목에 무언가 닿았다.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뜨면 목덜미에 달라붙은 아카시가 보인다. 쪼옥- 들으라는 듯이 과장된 입술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목을 덥석 문 아카시는 마유즈미의 목을 잘근 씹는다. 목덜미를 타고 전해지는 딱딱한 이의 감촉에 마유즈미의 몸은 굳는다.
(중략)
눈을 뜨면 침대 위였다.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 이불 속부터 확인한다. 다행히 속옷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일은 없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마유즈미는 그대로 쓰러져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또 그 꿈이다. 아카시의 꿈. 정확히는 아카시와……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마유즈미는 더 깊게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꿈에서 느껴졌던 통증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꿈의 기억은 바로 전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마유즈미의 꿈에 아카시가 나온다. 그것도 매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마유즈미의 인생에,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아카시 세이쥬로만큼 강렬한 인간은 없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하겠지. 그랬던 아카시니 만큼 어쩌다 꿈에 나오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매일 꿈에 나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정한 인물이 매일 꿈에 나오는 건 흔한 일이던가? 아니 그럴리가 없지. 그런 이야기는 못들었다.
아카시가 매일 꿈에 나온 다해서 매일 똑같은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평범하게 농구공을 사이에 두고 졸업 전, 아직 주장과 부원이었을 때처럼 호흡을 맞출 때도 있고 평범하게 차를 마시며 얘기할 때도 있었다. 모두 아카시가 나오는 꿈이었지만 꿈의 내용은 다양했다. 그렇지만 꿈속의 아카시와 가장 많이 하는 건…… 대체로는 오늘 꿈같은 것이지.
"대체 왜……"
베개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고 마유즈미가 중얼거린다. 왜 아카시는 매일 마유즈미의 꿈에 나타나는 걸까.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부터 몇 번을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아카시와는 이런 저런 일이 많긴 했지만 덕분에 고등학교 마지막 1년은 나쁘지 않았다고 정리했던 후배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유즈미는 올해 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계절은 벌써 가을을 넘어 겨울의 문턱을 밟고 있다. 졸업한 이후로 아카시와 직접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 따로 연락한 적도 없었다. 물론 그쪽에서 연락한 적도 당연히 없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꿈은 무의식에 잠재된 욕구가 표면에 드러나는 것이라 했던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언젠가 교양 수업에서 들었던 어느 심리학자의 주장이 떠올랐다. 그 주장을 마유즈미는 오늘도 필사적으로 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