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유즈미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며칠간 붙잡았던 리포트를 방금 겨우 끝낸 참이었다. 아슬아슬했지만 어떻게든 겨우 마감일에 맞추어 끝냈다. 마유즈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탁자에 올려진 시계를 보면 시각은 어느덧 한밤중이다. 시계를 보는 마유즈미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다시 마유즈미가 한숨을 쉬었지만, 이번에는 안도의 한숨은 아니었다.
작성한 리포트를 저장하고 방을 나서면 역시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그 작은 뒷모습을 보자니 마유즈미에게 은은하게 죄책감이 밀려온다. 리포트에 열중하느냐 잠시 잊고 있었다.
"아카시, 아직 안 자고 있었어?"
"아, 마유즈미씨, 일은 끝나셨나요?"
마유즈미가 부르는 소리에 읽던 책을 덮고 종종걸음으로 마유즈미에게 다가오는 아카시 세이쥬로라는 소년은 다름 아닌 마유즈미의 동거인이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는 아카시는 당연하지만 마유즈미의 아이는 아니다. 마유즈미는 이제 겨우 대학생일 뿐 저렇게 큰 애가 있기엔 일렀다. 밖에 나가면 형제냐는 소리도 종종 듣지만, 형제 사이도 아니다. 아카시는 사정이 있어서 마유즈미가 잠시 맡는 아이다.
아카시와 살기로 했을 때는 과연 자신이 어린아이와 살 수 있을지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마유즈미는 아카시와 잘 지내고 있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조숙한 편인 아카시는 마유즈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웬만한 일은 모두 스스로 하고는 했다. 오히려 너무 조숙할 정도인 아카시 덕분에 확실히 마유즈미가 신경 쓸 일은 별로 없었지만. 자신의 나이에 맞지 않게 행동하곤 하는 아카시를 보면 마유즈미는 때때로 안타까워지고는 했다.
"말했지? 내가 일이 있을 땐 기다리지 않고 먼저 자도 괜찮다고. 애들이 잘 시간은 훨씬 지났잖아."
"괜찮아요, 이 정도는. 기다릴 수 있어요."
"나 참……."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마유즈미가 허리를 숙여 아카시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면 아카시가 기분 좋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에 마유즈미의 입가도 느슨해진다.
가끔 문제라면 이렇게 늦게까지 아카시가 마유즈미를 기다리며 자지 않는다는 걸까. 웬만한 일은 혼자서도 알아서 하고 마유즈미를 그다지 의지하지 않는 아카시는 잠자는 거만큼은 마유즈미와 꼭 같이 자려고 들었다. 아무리 나이에 비해서 조숙하다 해도 아직 아이니깐 혼자 자는 게 불안한 걸지도 모르지. 평소엔 시간을 맞추어 같이 자곤 하는데 이렇게 마유즈미가 일이 있는 날에는 일이 끝나기까지 늦게까지도 아카시는 기다리고는 했다. 리포트 쓰는 걸 잠시 멈추더라도 재웠어야 했는데. 마유즈미의 불찰이다.
"그럼 시간도 늦었으니 인제 그만 잘까."
"네."
자기 전 제대로 양치를 시키고, 잠옷으로 갈아입힌 다음 이불을 펴 잘 준비를 마쳐 마유즈미가 이불 위에 누우면 아카시가 마유즈미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작은 몸이 마유즈미의 품 안에 안긴다. 아카시와는 항상 이렇게 잔다.
"안녕히 주무세요, 마유즈미씨."
"그래, 너도 잘자, 아카시."
껴 안은 채로 마리를 쓰다듬으면 아카시의 눈이 스르륵 감긴다. 그 모습을 보자니 마유즈미의 입가가 다시금 느슨해진다. 솔직히 말하면 마유즈미는 어린아이는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아카시와 함께 살게 된 지금도 아카시 이외의 아이는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아카시를 보고 있으면 종종 마유즈미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곤 했다. 아마 이것이 사랑스럽다는 감정이겠지. 좋은 꿈을 꾸면 좋을 텐데. 그런 바람을 생각하며 마유즈미는 눈을 감았다.
새근거리는 숨소리에 아카시가 눈을 뜬다. 조심스레 시선을 올리면 잠이 든 마유즈미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피곤했던 거구나. 오늘 마유즈미는 일이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저녁 먹고부터 지금까지 마유즈미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역시 그 일이란 게 힘들었던걸 테이지. 좋아하는 마유즈미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아이일 뿐이라는 사실이 아카시는 종종 원망스러워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언젠가, 어른이 되면, 그때는……. 먼 훗날 어른이 된 자신을 꿈꾸며 아카시가 마유즈미를 꼭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