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유즈미는 책상 위 탁상 달력을 들었다. 달력을 보면 어느 한 날짜에 동그라미가 쳐 있었다. 바로 오늘이다. 달력에는 동그라미만 쳐져 있을 뿐 무슨 날인지는 쓰여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쓰여 있지 않아도 무슨 날인인지는 알고 있었다. 벌써 이날이 온 건가. 마유즈미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바로 오늘 생각난 건 아니다. 몇주 전부터 마유즈미는 오늘이 다가오는 걸 의식하고 있었으나 결국 그동안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오늘을 맞이해버리고 말았다. 마유즈미가 오늘까지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건 결코 마유즈미의 고의가 아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마땅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벌써 오늘이다. 마유즈미라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오늘을 맞고 싶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결국 와버렸고 마유즈미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게 현실이었다.
그 녀석은 또 엄청난 걸 준비했겠지. 마유즈미는 자신의 연인을 떠올린다. 이날이 되면 항상 엄청난 것을 준비하고는 했으니깐. 마유즈미는 따라 하고 싶어도 무리다. 거기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올해는 마유즈미도 무언가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또 이렇게 되어버린다. 마유즈미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연인과의 기념일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연인인 아카시 세이쥬로와의 기념일이다. 아카시와의 교제도 이제 몇 년째로 접어든다. 교제를 시작한 이래로 아카시와 마유즈미는 매년 이날을 기념일로 정해 챙기고 있었다.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이 날은 두사람에게 있어서 특별한 날이다. 아카시는 늘 이날이 되면 엄청난 걸 준비한다. 작년 이날에는 같이 살자며 열쇠를 마유즈미에게 내밀었었다. 그 외에도 아카시가 기념일을 챙기는 이벤트는 셀 수 없이 많다. 그에 비해 마유즈미는 매번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특별히 아무것도 못 한 채 그냥 넘기기 일쑤였다. 아카시는 그런 마유즈미를 타박하거나 서운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마유즈미 또한 두 사람의 기념일인 오늘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마유즈미도 무언가 챙기고 싶었다. 그렇지만 또 이 모양이다. 퇴근하기까지 이제 3시간 남짓. 작년 이날 이래로 아카시와는 같은 집에서 동거 중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집에서 아카시를 보겠지. 그때까지 무언가 생각하지 않으면… 초조해하는 마유즈미를 두고 매정하게 시간은 계속 흘렀다.
"……다녀왔어."
"오셨어요?"
집에 들어서면 아카시가 마유즈미를 맞이한다. 아카시쪽도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평소라면 아카시 쪽이 마유즈미보다 더 늦게 들어와 마유즈미가 아카시를 맞이할 때가 더 많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아카시가 더 먼저 들어왔다.
"일찍 왔네……?"
"저희 기념일인걸요. 조금 무리했지만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집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아카시가 생긋 웃으면서 말한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식탁에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이건 다 아카시가 차린 거겠지. 식기 전에 드세요. 마유즈미가 식탁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면 아카시가 권유해온다. 아카시의 말에 식탁에 앉아 음식을 들면 역시 맛있다. 동거하기 시작했던 처음엔 미묘했던 아카시의 요리 솜씨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었다. 아카시가 완벽한 영역에는 요리도 예외는 아니라는 건가. 마유즈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진다. 기념일을 아카시가 이걸로 끝낼 리 없다. 마유즈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념일을 아카시가 이걸로 끝낼 리 없다. 보나 마나 이번에도 대단한 걸 준비했겠지. 그렇게 되면 마유즈미는 말을 꺼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먼저 선수를 쳐야 했다. 마유즈미는 결심하고 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어두었던 상자를 꺼내서 아카시에게 내민다. 상자를 본 아카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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