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눈을 뜨면 항상 아카시가 있다. 그것을 당연하게 인식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눈을 뜨면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아카시에 처음에는 매우 놀랐었지만, 지금은 마유즈미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이란 적응하는 생물이라고 했던가. 오히려 아카시가 없으면 허전함을 느낄 지경이다. 아카시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 또 구나. 잠이 덜 깬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아카시를 보며 마유즈미는 생각한다. 대체 아카시는 왜 옥상까지 올라와 자는 마유즈미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건지. 마유즈미로서는 알 수 없었다.
"옥상에 이렇게 올라올 시간도 있고. 학생회장님이 한가한가 봐?"
"이 시기엔 저라도 꽤 한가하거든요. 옥상에 올라올 시간 정도는 있습니다."
일부러 비꼬듯 말하면 아카시가 여유로운 듯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그 한가한 시간에 굳이 왜 이 옥상에 올라오는 것인가. 아카시에게 물어보면 대답을 해줄지도 모르지만, 마유즈미는 그만두기로 한다. 어차피 곧 있으면 졸업이다. 마유즈미는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카시랑 이렇게 만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보다 제가 늘 말하지 않았나요. 옥상에서 자는 건 여러모로 위험하니깐 그만두는 게 좋다고."
"참견마. 이제 농구부도 은퇴했으니깐 네 말을 들을 이유도 없거든."
"그렇지만 여기서 이렇게 자다가는 감기에 걸릴 수도 있고 또 누군가 옥상에 들어오면……."
"이 정도 날씨에 감기 걸릴 정도로 몸이 약한 편은 아니거든. 거기에 이 옥상은 나 아니면 누가 들어올 사람도 없고. 누가 들어온다 해도 금방 깰 거니깐."
"하지만 제가 들어왔을 때는 안 깨셨잖아요?"
"그건……."
그렇게 말하면 반론할 말이 없어진다. 마유즈미는 꾸욱 입을 다문다. 잠귀는 밝은 편이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 옥상에서는 제대로 자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 들어오면 바로 알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아카시가 들어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것이 아카시 때문인지 아니면 마유즈미 자신의 문제인지는 마유즈미는 모른다. 아카시말고 마유즈미가 이 곳에서 자고 있을 때 옥상에 올라오는 사람은 이제껏 없어 다른 비교군은 없었다.
사실 마유즈미도 옥상에서 자려고 자는건 아니다. 입시가 막 끝난 뒤에 긴장이 풀려서 일까. 옥상에서 봄햇살을 맞다 보면 춘곤증이 밀려왔다. 아카시 말대로 아직 바람은 찬 편이기에 무심코 자다가는 감기에 걸릴 수도 있겠지. 무방비한 상태로 누군가 들어왔을 때 위험할 수도 있었다. 마유즈미 또한 위기 의식을 아에 안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잠이 쏟아지는 건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 감기에 걸린적도 없고 자는 사이 무언가 도둑맞은 적도 없다. 애초에 이 옥상에 올라올 사람은 마유즈미와 아카시 정도. 낯선 사람이래 봤자 결국 학교 안이다. 금품 같은 건 들고 다닌 적도 없고 누군가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마유즈미에게 무언가 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카시는 늘 걱정된다는 듯이 잔소리를 하였지만, 마유즈미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 책이……."
마유즈미는 손안이 허전한 것을 지금에서야 알아챈다. 책을 읽다가 잠들었던 건 기억하고 있다. 따로 책을 어디에 놓지는 않았을 텐데. 일어났던 자세 그대로 마유즈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만 찾는 건 보이지 않는다.
"자, 여기요."
주변을 둘러봐도 찾는 책이 보이지 않아 조금 초조해질 즈음 불쑥 아카시에게서 책이 건네진다. 마유즈미가 읽던 그 책이다.
"…그걸 왜 네가 갖고 있어."
"아무래도 선배가 자다가 떨어뜨리신 거 같아서 주워놨습니다. 재밌던데요."
"읽었어…?!"
"네, 선배가 일어나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시간때우기로."
책을 건네주는 아카시가 생글거리며 웃음 짓는다.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 마유즈미는 아카시의 손에서 책을 홱 뺏는다. 멋대로 남의 책을 읽은 걸 탓하고 싶지만 이제 와서 화내도 어쩔 수 없겠지. 마유즈미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슬슬 들어갈 시간이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가 마유즈미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서 풀썩 넘어진다. 넘어질 때 제법 큰소리가 났다.
"마유즈미 선배, 괜찮으세요?"
"아, 응…."
마유즈미가 넘어지자 바로 근처에 있던 아카시가 놀라서 부축해온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요즘들어 옥상에서 자고 일어나면 종종 다리에 힘이 풀려 이렇게 넘어질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몸이 나른하고 무언가 몸에 위화감이 남았지만 마유즈미는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앉은 자세로 오래 잤기 때문에 힘이 풀린게 아닐까 막연하게 짐작할 뿐이다.
"그러길래 제가 말했잖아요? 조심하시는게 좋아요."
"……."
아카시의 말대로 조심하는 게 좋을지도….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아카시의 부축을 받고 일어서며 마유즈미는 넌지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