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면 거리에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다. 거리에 있는 가게들이 슬슬 문 닫을 시간이었다. 거리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마유즈미도 마감을 준비한다. 카페 안에 남아있는 손님은 더 없다. 근처 사무실들도 퇴근 시간이었다. 아마 이제 들어오는 손님은 없겠지. 평소보다 조금 이르지만, 문에 달린 [OPEN] 팻말을 [CLOSE]로 바꾸고 마유즈미는 카페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오지 않았군. 또 올게요, 라고 한 주제에. 떠올리고 잠시 멈칫했으나 얼른 다시 정리를 계속한다.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었을 뿐이야. 마유즈미는 떠오른 생각을 애써 털어버린다.
딸랑.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린다. 문은 잠그지 않았지만 분명 [CLOSE] 팻말이 달려있었을 텐데. 못 본 건가? 마감 정리 중일 때 들어오는 손님이 간혹 있긴 했다. 사실 원래라면 문 닫는 시간까지는 조금 남기는 했지만 이제와서 손님을 받을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내보내는 수밖에.
"죄송합니다만 오늘은 영업이 끝났…아……."
카운터 안을 정리하다가 손님을 내보내기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인 건 다름 아닌 아카시 세이쥬로의 얼굴이다. 뭐야, 이제 와서. 마유즈미는 몸을 뒤로 홱 돈다. 아카시의 얼굴을 지금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아직 영업 하시는 거죠?"
"밖에 팻말 못 봤어? 오늘 영업은 종료했어."
"봤습니다. 하지만 이곳 주인 분이랑 선약이 있어서요. 그리고 원래라면 아직 문 닫을 시간은 아니지 않나요?"
"오늘은 이미 끝났으니깐 나가봐."
최대한 매정한 목소리로 마유즈미가 말한다. 여전히 뒤를 돌은채 아카시의 얼굴은 보지 않았다. 그러나 마유즈미의 뒤로 웃고있는 아카시의 얼굴이 마유즈미의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 어쩐지 성질이 났다. 따지고 보면 아카시는 별 잘못이 없다. 아침에 또 온다고 했고 실제로 지금 다시 왔다. 마유즈미 본인도 알고는 있었지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만 그 대상이 아카시가 아니라 지금까지 내내 아카시의 한마디에 휘둘려 계속 신경쓰고 있던 자신이었을 뿐. 아카시한테는 말할 수 없었다.
"혹시 제가 늦게 와서 화내는 거에요?"
"화내긴 누가……"
마유즈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한다. 어느새 카운터로 들어온 아카시가 마유즈미를 뒤에서 껴안은 탓이었다. 또 이렇게. 마유즈미는 뒤를 돌아 자신을 껴안고 있는 팔을 뿌리치고 화내려고 했다. 그러지 못한건 뒤를 돌은 순간 아카시가 입술을 막은 탓이다. 입술이 닿은 순간 마유즈미의 몸이 일순 굳는다. 이내 마유즈미는 정신을 차리고 지금 있는 장소를 떠올린다. 문을 닫았다는 팻말을 걸어놨다고는 하나 누군가 들어올 수도 있었다. 누군가 지금 광경을 보기라도 하면. 마유즈미는 아찔해져 아카시를 밀친다.
"너말야, 이런 곳에서 무슨 짓이야!"
"이렇게 하면 선배 마음이 좀 풀릴까 해서요."
태연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아카시에 마유즈미는 말문이 막힌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술만 뻐금거리던 마유즈미가 관자놀이에 손을 올리고 길게 한숨을 내쉰다. 방금까지 밀려왔던 격한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진 지 오래였다. 조금 두통이 밀려왔다.
"…일단 자리에 앉아. 아무튼 손님이니깐. 차 한잔 정도는 타줄게."
"네, 감사합니다."
결국 마유즈미가 자포자기한 듯이 말하면 아카시가 항상 앉는 그 자리에 앉았다. 카페 문 닫는 시간이 조금 늦어질지도. 마지막 손님을 위한 코코아 가루를 찾으며 마유즈미는 넌지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