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유즈미는 마지막 상자의 포장을 열었다. 짐은 그리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짐을 풀면 꽤 많다. 이건 또 언제 정리할런지. 짐 포장을 이제 다 뜯었을 뿐이다. 정리까지는 더 걸리겠지. 마유즈미는 조금 막막한 기분이 들었지만 초조하지는 않았다.
"짐 정리는 다 하셨나요?"
"아니, 너는 이게 다한 걸로 보이냐."
방문이 열린다. 아카시였다. 이 집의 주인이기도 했다. 마유즈미는 한참 멀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아카시가 방안으로 들어오며 풀어놓은 짐들을 내려보았다. 제법 넓은 방이지만 풀어놓은 짐들과 아카시까지 들어오니 혼자 있을 때보다 꽉 찬 느낌이 든다. 아카시를 흘끗 보던 마유즈미가 다시 짐 정리를 하기 위해 상자 방향으로 몸을 돌리면 아카시가 마유즈미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 사실을 마유즈미도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하긴 적은 짐은 아니었으니깐요. 다 정리할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어요."
"그걸 알면서 이게 무슨 짓이야."
아카시의 팔이 그대로 뒤에서 마유즈미를 끌어안는다. 상자 안의 짐을 꺼내던 마유즈미의 팔이 멈춘다.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우리 집에 있는 선배가 사랑스러워서?"
"이제 내 집이기도 하거든."
"그걸 포함해서 사랑스럽다는 거에요."
아카시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여진다. 오늘부터 마유즈미는 이 집에 살기로 했다. 각자 혼자 사는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거의 반 동거 생활을 한 지도 몇 년. 결국 같이 살 필요성을 느끼고 동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쪽이 시간상으로도 금전상으로든 여러모로 절약이었다. 무엇보다 연인과 항상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을 충족시키는 데에도 동거 생활은 필요했다. 마유즈미가 아카시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 건 아카시의 집이 둘이 살 수 있을 정도로 더 크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나 짐 정리해야하는데."
"나중에 해도 됩니다."
"네가 하려는 짓도 나중에 해도 되거든. 어차피 이제 매일 얼굴보고 살거잖아?"
"그것도 확실히 그렇네요. 하지만 지금의 마유즈미 선배는 지금 밖에 없는걸요."
마유즈미의 셔츠 안으로 아카시의 손이 침입한다. 아카시의 손이 마유즈미의 배를 천천히 쓰다듬어서 마유즈미의 몸이 반사적으로 굳는다. 여기까지 했는데 아카시의 의도를 마유즈미가 모를리 없다. 마유즈미는 작게 한숨쉰다. 아카시의 말대로 정리는 나중에 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정말…어쩔 수 없네."
들었던 짐을 다시 상자 안에 놓고 아카시에게 껴안긴채 뒤를 돌아보면 아카시가 바로 입을 맞춰온다. 그대로 마유즈미는 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