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브(女)와 마유즈미의 연애 묘사가 있습니다
눈앞이 흐려진다. 머리가 무거워져 마유즈미는 그대로 고개를 숙인다. 기분 좋은 나른함에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눈꺼풀이 무겁다. 이대로 자고 싶다고 멍한 머리로 생각한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금방이라도 잠에 빠질 것만 같았다.
"마유즈미 선배… 괜찮아요…?"
"으음……."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든다. 탁자 건너편에 있는 사람이 아카시라고 인식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아카시가 내 자취방에 있는 거지. 아, 내가 들어오라고 했지. 떠오른 질문에 스스로 답을 냈다. 건너편에 앉아있는 아카시의 얼굴은 붉다. 탁자 위의 빈 맥주캔들이 마유즈미의 눈에 들어왔다.
"도련님이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
"그거야… 선배가 많이 마시니깐……."
그랬던가. 아니, 내가 많이 마셔도 너는 마시면 안 되지. 대답하고 싶은데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혀가 꼬여 말이 입안에 맴돌다 사라진다. 무거운 머리를 지탱할 수 없어져 마유즈미는 다시 고개를 숙인다.
"정말… 괜찮아요…?"
아카시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귀에 닿는다. 그렇지만 괜찮다는 말은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자신은 지금 괜찮은 건가? 괜찮지 않을지도 모른다. 원래 술을 잘 마시는 편은 아니다. 어쩌다 동아리 모임에서 술자리가 있어도 늘 우롱차를 따로 시켰다. 그렇지만 오늘은 마시고 싶었다. 살다 보면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날도 있다는 사실을 마유즈미는 이제야 실감한다. 마유즈미의 경우엔 오늘이 그 날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버티기가 힘들다. 눈앞의 맥주캔을 들으면 아직 술이 남아있다. 그대로 입에 가져가 모조리 털어 넣었다. 쓴 알콜이 식도를 타고 온몸에 퍼진다.
"내가 사람 마음을 잘 모른다고……."
마유즈미가 툭 중얼거린다. 바로 몇 시간 전에 들은 말이었다. 말을 했던 상대는 전 여자친구. 몇 시간 전까지는 전이란 글자가 붙어있지 않았다. 전 연인의 얼굴은 벌써 흐릿해져 기억 저편에 사라지고 있건만 헤어지기 직전에 했던 저 말만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맴돌고 있다.
마유즈미군은 정말 사람 마음은 잘 모르는구나.
헤어지기 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했다. 마유즈미는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 말은 사실이었으니깐.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어울리는 게 곤란했다. 혼자가 편했다. 그건 존재감이 없다는 이 특성 때문만은 아닐 터다. 아니, 이 특성 탓에 이런 기질이 된 걸까. 이제 와서 그런 인과관계는 아무래도 좋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정도는 마유즈미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마유즈미는 자기 자신을 좋아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전 여자친구와의 교제 기간은 3개월 남짓. 먼저 마유즈미에게 다가온 건 전 연인의 쪽이었다. 짧다면 짧은 연애 기간이지만 마유즈미로서는 첫 연애였다. 첫 연애에 마유즈미도 드물게 의욕적인 상태가 되어 마유즈미 딴엔 신경 쓴다고 썼것만 결국 끝은 이 모양이다. 어느 정도 예상하던 끝이었던 만큼 미련이 남은 건 아니었지만 첫 연애의 끝이자 첫 실연이었다. 당장 괴로운 감정은 어쩔 수 없다. 이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겠지. 그러니 오늘만이다. 이렇게 술을 마시는 건.
목이 타는 갈증을 느껴 눈앞의 맥주캔을 든다. 바로 전에 모조리 털어 넣은 탓에 맥주잔은 가볍다. 아, 새로 맥주를 가져오지 않으면… 맥주캔을 넣어둔 냉장고로 가기 위해 비틀거리며 일어서면 다리에 힘이 풀려 마유즈미는 주저앉아버린다. 으, 다시 신음을 내며 일어서려고 하면 어느새 마유즈미에게 다가온 것인지 아카시가 일어서려는 마유즈미를 부축한다. 아카시는 여전히 마유즈미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많이 취하셨어요, 선배."
"아… 그런가…? 하지만 오늘은 취해도……"
"이만 주무시는 게 좋으실 거 같네요."
자기도 얼굴이 붉은 주제에 아카시가 마유즈미를 타이르듯 말한다. 이런 꼴을 보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마유즈미는 아카시에게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아카시를 부른 건 마유즈미가 아니다. 마침 술을 사 들고 자취방으로 향하는 도중 만난 아카시가 자신도 집에 오겠다기에 막지 않았을 뿐. 하긴 그거나 그거나 인가…
아카시의 말대로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을 감으면 잠에 빠져들 것만 같았지만 지금은 자고 싶지 않아. 그런 마유즈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마유즈미를 부축한 아카시가 얼른 자라고 재촉하듯 마유즈미의 등을 쓸어내린다. 그렇게 되면 몰려오는 수마는 더는 막을 수 없다. 마유즈미는 결국 눈을 감는다. 의식이 끊기기 전 아카시가 무언가 말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마유즈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마유즈미를 침대에 눕히고 나서야 아카시는 한숨을 내쉰다. 그러길래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이 왜 무리를 해서… 하긴 내 쪽도 마찬가지인가. 자신의 처지에 아카시가 자조한다. 하지만 아카시로서도 어쩔 수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 실연을 당했다며 괴롭게 술을 마시고 있는 앞에서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겠지. 마유즈미가 술을 마시지 않고 못 배겼던 상황이었던 만큼 아카시도 그랬던 것뿐이다.
"…마유즈미 선배는 정말 사람 마음을 모르네요."
툭 던져본 말이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아카시가 다시 짧게 한숨 쉰다. 그렇지만 이 괴로운 짝사랑도 머지않아 끝날지도 모른다. 이제 거리낄 것도 없으니깐. 가지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니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건 술기운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마유즈미의 뺨을 쓰다듬는 아카시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연성 >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먹] 화이트데이 (0) | 2019.03.14 |
---|---|
[적먹] 열병 (0) | 2019.03.13 |
[적먹] 친구의 연애사정 (0) | 2019.03.10 |
[적먹/R19] 너의 이름 (0) | 2019.03.09 |
[적먹] 불안감 (0) | 2019.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