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적먹 전력의 지각으로 투고하는 글..
전력의 주제는 승리였습니다.
버저가 울리고 시합의 끝을 알렸다. 관중석의 환호성 소리가 귀를 찌른다.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점수판을 바라보면 압도적인 숫자로 이긴 것은 라쿠잔이다. 당연한 결과였다. 아직 지역 예선의 초반, 이번 대회의 우승후보인 라쿠잔의 경기다. 그에 비해 상대는 무명의 고등학교. 승리의 행방은 시합이 시작되기 전부터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경기장에 있는 모두가 라쿠잔의 승리를 확신했고 그 확신은 방금 전 현실이 되었다.
그 당연한 승리조차도 마유즈미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경기장의 조명, 관중석의 환호성 소리, 시합 직후의 열기, 왠지 모를 이 두근거림도 마유즈미에게는 처음이었다. 왼손을 올려 천천히 쥐었다 펴본다. 방금 전까지 패스했던 손이었다. 라쿠잔의 승리를 본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 손으로 패스했던 것도 처음은 아니다. 그렇지만 마유즈미의 패스가 실제로 라쿠잔의 승리로 이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마유즈미는 마른 침을 삼킨다.
"치히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마유즈미를 불러 마유즈미는 정신을 차린다. 이 코트 위에서 마유즈미를 치히로라고 부를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아카시였다. 돌아보면 날카로운 눈동자가 마유즈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동자와 마주하면 뜨거웠던 머리는 단번에 차갑게 식는다. 움찔하는 마유즈미를 보는 아카시의 눈이 가늘어진다. 아카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아카시는 뒤를 돌아 정렬하기 위해 심판의 앞으로 향한다. 그 뒤를 마유즈미도 곧 뒤따랐다.
"이 정도에 승리에 흥분하면 곤란해, 치히로."
아카시의 목소리가 빈 부실에 울린다. 학교로 돌아와 다들 해산하는 가운데 마유즈미만을 남겨서 다짜고짜 한다는 소리가 저거다. 흥분하긴 누가. 바로 반박하고 싶었지만 입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경기장에서부터 울리던 심장은 여전히 쿵쾅대고 있다. 부실의 의자에 앉아있는 마유즈미를 아카시가 내려보고 있었다.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을 마주치기 힘들어 마유즈미는 고개를 돌려 피한다. 분명 고개를 돌렸는데도 옆이 따갑게 느껴졌다.
"…처음이니깐 어쩔 수 없잖아."
따가운 시선에 못이긴 마유즈미가 고개를 숙이며 볼멘소리로 중얼거린다. 무엇이 처음인지는 얘기하지 않는다. 농구를 시작한 이래로 공식전의 선수로 나온 것도, 그 공식전에서 이겼던 것도 모두 처음이었고 사실이었지만 그것을 스스로 말하기엔 비참한 기분이 든다. 마유즈미는 더 말하지 않고 입을 꾸욱 다문다.
"라쿠잔의 선수라면 좀 더 승리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 앞으로의 승리가 많이 남아있으니깐 말이지. 벌써 이렇게 들떴다가는 앞으로의 승리에 영향이 갈 수도 있어."
"…그러시겠지."
마치 앞으로의 승리가 당연하다는 투다. 아마 그 의미가 맞겠지만. 저 도련님은 오늘의 승리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매일 당연하게 승리를 몸소 체험하시고 있을 테니깐. 자신과는 달랐다. 새삼 느껴지는 격차에 마유즈미는 미간을 찌푸린다. 아카시의 말대로 이 정도 승리에 기뻐하고 있는 자신이 어쩐지 한심해 진다.
"오늘 플레이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얘기를 하려고 남긴거면 이만 돌아가도 되겠지? 결론이 나는 문제도 아니니깐 말야."
이 이상 아카시와 얘기하고 있으면 자신이 더 비참해질 뿐이다. 이만 돌아가고 싶었다. 마유즈미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아카시가 갑자기 얼굴을 붙잡아 돌리지만 않았다면 그랬을 터였다.
얼굴이 끌어당겨져 위를 향했다. 마유즈미가 눈을 크게 떴을 때 보이는 것은 아카시의 눈에 비친 겁먹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그대로 얼어 반응하지도 못하고 있으면 입술에 무언가 닿는다. 그것이 눈앞의 아카시의 입술이라고 마유즈미가 인식한 것은 입을 맞춘 채로 아카시의 입술이 달싹였을 때였다.
방금 전 상황에서 이렇게 흘러갈 만한 거리가 있었던가? 아니다. 바로 전에 자신과 아카시 사이에 있는 것은 차가운 기류였을 뿐 로맨스 영화의 그 특유의 달콤한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비현실적이라고 불리는 라노벨에서도 이런 식의 뜬금없는 입맞춤은 본 적 없다. 우리가 입을 맞출만한 사이였던가? 이거야말로 전혀 아니었다. 자신과 아카시는 그저 같은 부의 주장과 부원일 뿐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비록 자신과 아카시의 사이가 일반적인 주장과 부원은 아니었다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니 그것보다…
이 상황이 어떻게 벌어졌지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아카시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 위에 겹쳐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유즈미는 눈앞의 아카시를 있는 힘껏 민다. 전력으로 내동댕이칠 기세로 밀었는데 얼굴이 떨어졌을 뿐 아카시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분했지만 지금은 신경 쓸 것이 그것이 아니었다.
아카시의 얼굴이 떨어지자마자 손등으로 입술을 가렸다. 조금 전까지 겹쳐지던 입술의 감촉이 생생했다. 이거 설마 첫키…… 아니 그건 지금 생각하지 말자. 조금 울고 싶은 기분으로 마유즈미는 입술을 살짝 깨문다.
"갑자기 무슨 짓이야!"
"어때, 치히로. 지금도 두근거려?"
"뭐…?"
벌떡 일어나서 여차하면 한 대 때릴 기세로 화냈는데 돌아오는 대답에 마유즈미는 말문이 막힌다. 두근거리냐니. 이런 상황에. 설마.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까보다 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니 이건 갑작스런 상황에 심장이 놀란 거니깐. 공포영화를 봤을 때 심박 수가 올라가는 거랑 마찬가지야. 마유즈미는 애써 생각을 돌린다. 그러는 사이 아카시가 다시 마유즈미의 얼굴을 잡는다. 아카시가 손가락이 마유즈미의 뺨에 닿으면 마유즈미는 얼어버린다. 아까와 똑같은 상황인데 뿌리칠 수 없었다.
"기억해 치히로. 지금 네가 두근거리는 것은 나 때문이니깐."
"뭐라고…?"
"승리가 너에게 자극적인 것이라면 더 큰 자극을 주면 돼. 그렇다면 승리에 대한 감각은 무뎌질 테니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바보 같은 이론이라고, 마유즈미는 생각했다. 하지만 시합에서 이겼을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두근거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건… 반박을 하기 위해 마유즈미의 입술이 달싹인다. 그렇지만 마유즈미가 무어라 반박하기도 전에 아카시의 입술이 다시 마유즈미의 입술 위로 포개져 마유즈미의 반론은 조용히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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