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부치의 부름에 아카시는 정신을 차린다. 미부치의 부름에 아카시가 놀란 얼굴로 돌아보면 미부치가 더 놀란 얼굴을 한다. 아차 싶어 아카시는 표정을 가다듬는다. 아카시의 얼굴은 금세 평소의 라쿠잔의 주장으로 돌아온다.
"무슨 일이죠?"
"1군 훈련 메뉴에 대해 세이쨩에게 확인받을 게 있어서. 확인해줄래?"
미부치가 가져온 1군 훈련 메뉴 표를 받아들여 보면 별문제는 없었으나 어쩐지 허전해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라쿠잔 1군의 훈련 메뉴에는 통상의 1군 훈련 외에 특별한 훈련메뉴가 추가되어 있었다. 단 한 사람을 위한 메뉴였다. 이른바 맞춤식이다. 그의 체력도, 능력도 다른 1군들과는 다르니 특별취급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훈련 메뉴를 짜고 감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카시의 몫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감독도 일절 터치하지 않고 아카시에게 모든 걸 맡겼다. 이제 그는 1군에, 아니 라쿠잔 농구부에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그만을 위한 훈련메뉴도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카시는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든다.
"…특별히 문제는 없네요. 이대로 진행해도 될 거 같습니다."
"알았어, 그럼 감독님한테도 그렇게 말해놓을 테니깐……"
미부치가 훈련 메뉴 표를 받아들고는 말끝을 흐리며 아카시의 얼굴을 힐끔 본다. 무언가 더 할 말이 있으신가요? 아카시가 묻는다.
"세이쨩, 어쩐지 요즘 변한 거 같아서."
"네?"
아카시가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미부치는 아무 말 없이 싱긋 웃을 뿐이다. 그럼 난 감독님한테 갈게. 미부치는 더 말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떠난다. 미부치가 가는 모습을 멀뚱히 지켜보고 있으면 곧 미부치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아카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변한 거 같다, 라… 미부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왜냐면 그가 지금까지 보던 아카시와 지금의 아카시는 다른 인격체였으니깐. 다른 인격체 역시 결국은 아카시 본인이지만 지금의 아카시와는 다른 존재이기도 하다.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지금 아카시가 신경 쓰이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최근의 아카시는 어딘가 이상하다. 아까처럼 멍하니 있다가 누군가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는 일이 잦아졌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 아카시가 넋이 나간 채로 멍하니 있는 모습을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하지만 잠깐 전에도 멍하니 있다가 미부치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참이다. 언젠가 멍하니 있던 아카시에게 말을 걸어왔던 하야마가 아카시의 정신이 딴 곳에 있는 거 같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아카시도 동감이었다. 대체 아카시의 정신이 어디로 간지는 알 수는 없지만.
이 밖에도 침대에 누우면 잠을 잘 수 없다던가, 때때로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든가. 원인 모를 초조함에 휩싸인다든가. 아카시가 어딘가 이상한 것은 분명했다.
이런 일은 없었는데. 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 피곤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거치고는 몸 상태는 최상이다. 설마 인격의 주도권을 넘겨받은 것의 부작용 같은 것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아카시는 가슴을 움켜쥔다.
이 기분은 또 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하며 초조해진다. 무언가 부족한데 그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충동감에 사로잡히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는 모른다. 분명 자신의 마음일 텐데도 이 마음이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른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다.
"옥상이라도 올라가 볼까……"
옥상에 올라가 바람이라도 쐬면 이 원인 모를 답답함이 사라질 것 같다.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