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안에 커피 향이 감돈다.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그 향을 마유즈미는 좋아했다. 이 직업을 택한 이유가 딱히 그것 때문은 아니긴 했지만. 방금 내린 커피가 손님을 위한 거라면 커피 위에 하트든 나뭇잎이든 그렸을 테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런 걸 그리지 않아도 커피 맛은 다 똑같은데. 직접 내린 커피를 홀짝이며 마유즈미는 생각한다.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마유즈미가 선곡한 재즈 음악이다. 조용한 시간이었다. 막 카페를 오픈한 한가한 시간 또한 마유즈미는 좋아했다.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다. 계속 이렇게 조용하면 좋을텐데. 못다 읽은 책을 들며 생각한다. 진짜로 손님이 없다면 카페 문을 닫아야 하니 그냥 실없는 생각일 뿐이지만.
문에 달린 방울이 소리를 낸 건 마유즈미가 마악 책을 펼치고 1페이지를 읽는 도중이었다. 쳇, 한창 좋을 때였는데. 정말 눈치가 없는 손님이네. 속으로 혀를 찼지만 마유즈미는 애써 표정을 고친다. 어쨌건 손님은 손님이다. 마유즈미는 책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서 오세…켁."
"손님을 보고 그런 반응이라니, 너무 한 거 아닌가요?"
"이런 반응이라 미안하게 됐네."
첫 손님으로 네 얼굴을 보는 내 입장도 좀 생각해주지 그래. 마유즈미가 볼멘소리로 중얼거린다. 그 말을 듣고도 아카시는 웃을 뿐이다. 아카시가 언제나처럼 마유즈미가 있는 카운터와 제일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 잡는다.
"항상 마시는 그거로 주면 되나?"
"네, 부탁드립니다."
마유즈미는 찬장의 코코아 가루를 꺼낸다. 아카시는 의외로 입맛이 어린애 같은 면이 있었다. 커피를 마실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카시는 그래도 아카시는 쓴 커피보다 단 핫초코 쪽을 더 선호했다. 마유즈미도 그 사실을 안 것은 얼마 안 됐다. 아마 이곳에서 카페를 내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는 사실이었겠지.
큰맘 먹고 낸 개인 카페가 하필 고등학교 후배가 다니는 회사의 건물일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제 와서 확률을 논해도 소용없겠지. 바로 자신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깐. 그 말대로다. 얼마 전까지 평범한 회사원이던 마유즈미는 회사를 그만두고 이 카페를 차렸다. 자리도 좋고 세도 그리 비싸지 않아 처음 카페 일을 시작하려는 마유즈미에게는 제법 괜찮은 조건이었다. 카페를 차리기로 하고 이곳을 발견한 마유즈미는 곧장 큰 고민 없이 계약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유즈미는 이곳에서 졸업하고 만난 적 없는 고등학교 후배와 재회하게 될 거라고 전혀 예상 못 했다.
"자, 여기."
완성된 핫초코는 마유즈미가 직접 아카시가 있는 테이블에 갖다 주었다. 원래 마유즈미의 카페에서는 주문받은 음료를 손님이 직접 가져가게 되어있지만 다른 손님도 없고 뭐, 괜찮을까. 마유즈미는 그 정도로 융통성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마유즈미는 다시 카운터에 들어가는 대신 아카시가 앉은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아 아까 읽던 책을 펼쳤다. 아카시 말고 다른 손님이 온다면 다시 들어가야겠지만 지금은 괜찮겠지. 아카시는 아무 말 않고 마유즈미가 가져다준 핫초코를 홀짝인다.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읽던 책의 책장을 넘기며 마유즈미는 넌지시 생각한다.
"잘 마셨습니다."
"아, 이제 가보려고?"
"네, 잠시 틈을 내서 오긴 했지만, 언제까지고 회사를 비울 순 없으니깐요."
하긴 그렇지. 핫초코를 다 마신 아카시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보며 마유즈미는 수긍했다. 아카시의 회사에서의 직책은 이사라고 들었다. 그 나이에 벌써, 라는 생각이 안 들은 것은 아니지만 상대가 아카시라면 자연스럽게 납득 되었다. 아카시라면 당장 대기업 사장직을 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마유즈미가 기억하는 아카시는 늘 높은 곳이 어울리는 남자였으니깐. 마유즈미는 아카시 밑에서 일하는 사원들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 밑에서 일하는 자신도 상상해보다가 얼른 그만둔다. 아카시의 아래에 있던 경험은 고등학교 때면 충분했다.
"있다 또 올게요."
"됐어, 네가 있음 정신 사나우니깐."
"하하, 그런가요."
매정하리만큼 퉁명스러운 마유즈미의 대답에도 아카시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긴다. 항상 그랬다.
"그럼 있다 뵙죠, 마유즈미 선배."
그 말과 함께 아카시는 카페를 나선다. 이번에는 나가는 사람을 배웅하는 방울 소리가 멎으면 카페 안은 다시 마유즈미 혼자가 된다.
"있다가 또, 인가…"
혼자 있는 카페 안에서 마유즈미가 중얼거린다. 아카시 앞에선 퉁명스레 대답했지만 아카시가 다시 오는 순간이 내심 기대되는 건 마유즈미도 어쩔 수 없었다.